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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주의 시간
나의 부사관으로서의 삶 1편 본문
안녕하세요 블주 입니다.
오늘은 일기 식 포스팅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 부사관으로서
중사라는 계급을 달고 전역을 하였습니다.
( 오른쪽 이태원에서 만난 미 육군 테일러 중위 친구 되다. )
지금은 정말 많은 것이 변해서 양성 교육이라 불리는 교육 기간
도 다르고 대학을 통한 임관도 있고 정말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부사관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12주의 부사관 양성 기간을 거쳤습니다.
그 당시 병 생활을 하다가 현역 부사관으로 임관을 했기때문에
민간 부사관으로서 사회에서 임관을 준비했던 인원들보다
체력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 현역 병 복무 시절 맨 앞에 하트가 접니다 )
조금만 뛰어도 정강이 부분이 아려 왔었죠.
그 12주의 기간 동안 살도 많이 빼고 체력도 많이 길러서 임관을하게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다' 라고 만 생각을 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내심 책임감 체력 등 말이 쉽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가 정말 힘든 것들을 해낼 수 있었던
성취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던 제 부사관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간 같습니다.
( 임관 후 초급 반 동기들)
지금에 와서도 그 당시 만났었던 동기들과 현재도 연락 할 정도로
가장 가깝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추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사관 학교에서의 생활은 제한이 많습니다.
편의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죠.
병사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날락 거렸던 PX 조차 이용이 금지였습니다. 몰래 들어갔다가 걸리면 집으로 돌아 갈 각오를 해야만 했죠.
멀리서 들어갔다 나오는 병사들을 바라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간부 후보생으로 왔는데 병사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너무하네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도 12주만 버티면 하사로서 임관을 하니까 참아보자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고 또 다른 동기들도 다 같이 참고 있으니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했었던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부사관 후보생이 먹을 수 있었던 사제 군것질은 교육 대 앞에 2대 씩 놓여있던 음료수 자판기가 다였습니다.
그게 어디인가 하면서 참 많이 뽑아 먹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육군사관학교 1~2학년 생도 들이 부사관 학교로 교육 차 현장실습을 견학 왔었던 적이 있습니다.
단체로 보급 선글라스를 끼고 군인 답지 않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자 혀의 감각을 살려줄 자판기의 음료수를 지나가면서 모조리 동내었던 장교 후보생들이었죠.
저의 동기들은 그런 장교 후보생들을 바라보면서 자대에 먼저 갔을 때
저 후보생들 중 소위로 임관해서 오는 소대장은 쉽지 않은 군생활이 될거다. 하면서 이를 갈았고요.
부사관 양성 생활을 경험하면서 미묘한 신경전이 간간히 벌어 질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저의 기수보다 한 기수 먼저 들어와서 교육을 받는 후보생들이었죠.
그 후보생들은 저희를 보면서 후배라고 놀렸고 우리는 그런 그들을 보며 어차피 1년 동기제인데 꼴깝을 떤다 라면서 비아냥 거리기 바빴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긴 기억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런 한 기수 위 동기들이 부러워 질때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임관식을 한달 먼저 겪는다는거죠.
평소 부사관학교 안에는 민간인은 커녕 시커먼 훈련부사관 교관님들과 빡빡 머리에 땀 뻘뻘 흘리고 다니는 동기들 밖에 없었는데
임관식이 진행되는 당일이 오면 아들 찾아서 오신 부모님들과 친구들 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황량했던 거리를 가득 메우죠.
저희는 독도법 훈련 도중 그런 광경을 목격하고 앞으로 남은 한달을 원망하게 됩니다. 차라리 보지 안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괜히 기웃 기웃 하다가 빨리 임관하고 싶어서 시간이 배는 안가는 것 처럼 느껴졌거든요.
아무튼 유격 훈련도 해보고 불침번 서다가 귀신 봤다는 동기 때문에 새벽 3시에 소리 질러서 잠자던 동기들 다 깨고
교관님도 깨어서 달밤에 연병 장 나가서 체조 한적도 있고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임관식 당일이 왔을 때는 그렇게 바래왔지만 또 막상 가려니 아쉬움이 가득 한 그런 하루 였습니다.
임관 일주일 전부터 임관식 예행연습을 하는데 여름 기수여서
제식 연습을 하다가 픽픽 쓰러지는 동기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임관식을 하는 것은 좋지만 연습을 위한 그 일주일은 부사관학교에서
교육 받았던 그 어떤 시간들 보다 힘들었죠.
( 임관 후 초급 반 시절 대전 국군 페스티벌 행사 )
그런 저의 동기들과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임관 식을 하는 당일에는
하늘에서 비가 그렇게 내렸습니다.
교육 기간동안 어떻게 보면 교육 성적 관련해서 부당한 부분도 있고
한 명이 잘못을 하면 전체가 다같이 혼났기에 이유도 없이 샤워하다가 대충 샴푸만 닦고 헐레벌떡 군장 싸서 연병 장 뺑뺑이 돌았던 적도 있고
참 다양한 이유로 하루에 5분 정도 부모님과 통화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주어질 때 마다 집에 가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 등등
엄청 칭얼 거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임관 식 당일 어깨의 계급을 달아주러 멀리서 하던 일도 중지하시고 달려오신 부모님을 보니 정말 잘 참았다 스스로가 으쓱 으쓱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임관식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행사가 끝나고 부모님을 향해 경례 할때와 정복의 모자인 정모를 하늘로 던질 때 같습니다.
정모를 하늘로 던질때가 되면 임관을 했다는 기쁨 반 앞으로의 군생활에 대한 걱정 반 이라는 알쏭달쏭한 그런 감정이 스며들죠.
이렇게 저의 부사관 후보생으로서의 시간이었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육군 2사단 32연대 3대대에서 첫 하사로써 분대장 임무 수행했던 기간에 대해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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