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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으로써 임무수행하며 느꼈던 나의 경험담 1편 본문

부사관/나의 부사관 인생

부사관으로써 임무수행하며 느꼈던 나의 경험담 1편

life is money 2020. 5. 2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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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부사관을 생각하고 계신 여러분에게

     

  2014년도 처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에 위치한 2사단 포병대대로 전입을 가게 되었죠.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대암산 한 가운데에 위치한 부대였었고, 탈도 많고 말도 많았     던 군 생활을 보냈었답니다.

   

 저도 많은 국군 장병처럼 전역하면 강원도 방향으로는 생리 현상도 해결하지 않겠다며, 오지 않는 전역 날을 기대하는 많고 많은 사람들 중 한 명 이었죠.

 

 그러다 전역이 머지않은 시점에 부대 안에 걸려있는 육군 부사관 모집 공고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길지 않은 고민을 한 후 부사관으로 써 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죠.


 본문에 보이듯이 강원도 지역으로는 생리 현상도 해결하지 않는다 해 놓곤 무슨 생각이 들어 부사관을 지원했냐 하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저는 의외에 삶의 시점에서 군 과 밀접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어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2년의 시간을 대전에 있는 전문 대학교(총 포 광학과) 부사관 학과를 전공하며 생활을 했었거든요.


 내가 배운 지식이 아까워서 그리고, 비록 병사의 신분이지만 군에 적응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가짐에서 지원을 하게 됬었습니다. 그렇게 전역이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저는 전북 익산에 위치한 부사관 학교로 전출 명령을 받고 임관을 목표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죠.


 


 제가 생각했던 간부 양성학교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병 생활을 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교육 받았던 4개월의 기간동안 얼차려를 하루라도 받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이 안 올 정도였거든요.

 

 매일 아침 구보를 통해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땀에 젖은 채 식당 앞에 오와 열을 맞춘 상태로 식사 입장을 기다리고, 밥을 받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때면 교관님들께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식사를 하는 교육생들을 쳐다보았죠.


 당시에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 알고보니, 군기를 들이기 위해 엄하게 굴었다고 했죠.

  

 힘든 하루 일과가 종료 되어 올 시간이 와도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해 본적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각 교육대에는 부모님과 유일하게 전화를 할 수 있는 전화 부스가 2대 씩 놓여 있었는데,  많은 인원이 두 대의 전화 부스를 이용하기에는 소요가 너무 부족했죠.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 포기할까?, 여기서 지금 나가도 돼? 라며 고민을 털어 놓을 때면 아버지께서는 너 마음대로 해라 하면서 응원 아닌 응원을 해주기도 했고요.


 또 한, 각 과목마다 평가라는 시스템이 존재했는데, 교육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안되면 유급 이라는 제도로 한 기수를 미뤄 다시 4개월 간 교육을 받아야 했기에 평가를 봐야 되는 주가 찾아오면 일과 이후에 공부하다 잠든 날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날 이 찾아 올 때면, 고등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 공부하진 않았는데 여기 오니깐 평생 공부할 것을 여기서 다하네 하며 한탄도 했고, 이렇게 공부 할 걸 학교 다닐때 했으면 조금 더 좋은 대학을 갔을 텐 데 하며 저 스스로를 원망 했던 적도 있었죠.


 체력이 좋지 못하면 그런 일과가 끝나도 쉴 수 있는 휴식 여건의 보장 없이 점호 전까지 체력 단련을 시키기도 했죠. 당시에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그 시간이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들어온 것 만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얻어 가는 것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도 그러한 경험과 기억이 저를 여기까지 버티고 적응하게 해줬던 이유가 되니까요.


안될 것 같단 생각보단 일단 해보자. 


다른 수 많은 동기 교육생들도 참고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


 20kg이 넘는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할 때도 그 무게감에 항문에 힘이 너무 들어가 배변욕구가 솟구치고 어깨가 아려와도 버틸 수 있는 참을성을 심어줬죠.


 두번째는 교육을 받으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인데,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곳에서 조차 버티지 못하면 사회에 일원으로써 발을 들여 놨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으로는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버텨서 멋지게 임관하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아마 이건 교육을 받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신념 중 한 가지 일 겁니다.


 군대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 온 서로 다른 이상과 생각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전우' 라는 신념 아래 집단으로 모여있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어렵고 힘든 점이 많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사회에 있는 직업들은 어느 정도 본인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율성이 있지만, 군대는 들어올 땐 자의 지만 나갈 때는 자의 가 될 수 없거든요. 생각했던 직업의 특성이 아니 여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서, 훈련이 힘들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제일 큰 이유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많은 초급 간부들이 어려움을 호소 하고 있지요. 


 본인이 부사관을 또는 장교를 선택하여 입대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낯선 환경에 당황 할 수 있기에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부사관 학교 생활은 이렇듯 쉽지 가 않습니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었죠. 개나 소나 다하는 게 부사관이다. 솔직히 반박하지는 않습니다. 

버티고 이겨내기만 하면 다른 공무원 입사 시험보다 매우 쉽게 공무원이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게 해주거든요.


 하지만 버텨야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아 조금 힘드실 수도 있다는 말 꼭 해주고 싶네요. 흡연을 했던 사람은 강제로 4개월 간 금연을 해야만 하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 쉬고 싶은 것, IT시대에 차란한 문명 중 한가지인 핸드폰을 쓰지만 않으면 되거든요.


 이런 거 못 버티는 분들께서는 부사관 지원해서 임관하는데 까지 고난과 역경이 함께 할 겁니다.


 이야기 하다 보니깐, 안좋은 소리만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육군 부사관이라는 꿈을 가지신 분들에게 있어 양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본인만의 군인으로써의 가치관과 신념을 확정 짓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대에 배치 받아 후에  계급이 오르는 그 순간까지 기본이 되어줄 각자의 이정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대에 가게되면 각자 다양한 환경과, 부대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은 퇴색되기도 또는 발전하기도 하는게 신념이자 가치관이지만, 어느 정도 틀을 잡아주는게 학교 이니깐요.


 음 저의 부사관 후보생 시절 이야기를 해 보았구요 더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사소한 문제는 접어두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을 적어봤습니다.


 

▶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부사관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 실상을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솔직한 경험담을 통해 누군가에겐 꿀팁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저의 경험담 이외에 더욱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계신 수많은 간부들이 있지만,  적어도 육군으로 지원하시는 분들에 한에서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게 끔 저의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다음 편 에서는 부사관 생활 후기 2편 진행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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